공룡능선
산과 함께 할때마다 공룡능선에 대한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디.
'설악산' 많은 선인들이 이야기 했지만 그 중에 고려시대 문신 안축의 말이 기억난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그러나 설악산은 수려하고 웅장하다고 했다.
이처럼 설악산은 우리나라의 산 중에 제일 아름다운 산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산이라는 것을.
산을 가까이 하면서 부터 자신감이 붙어가면서 공룡을 오른다는 것은 나에게는 상당히 값진 경험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겁이 나는, 한편으로는 다시 가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고 설사 갈려고 하면 힘들었던 생각들로 조금은 움칠거리는 그런 산이 공룡이였다.
공룡의 비경을 보고 너무도 놀랬고, 그 비경에 취해 한겨울 2월에 지나갔던 길을 다시 6월에 그리고 10월에 갔던 사진들을 한곳에 대충 담아본다. 한번도 뇌리를 떠난 적이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끔 보고 싶은 생각에 내가 담아왔던 사진을 올려본다. .
전문 산악인들은 이 아름다운 공룡을 몇번이고 수없이 넘은 분들도 많겠지만 세번의 공룡을 넘고는 많은 생각이 달라진 나였다.
고등학교 시절 무전여행을 한답시고 내설악에 들어가 속살을 보고는 여기는 딴 세상이구나 하는 기억이 났다. 그 뒤로 꼭 한번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하면서 젊음시절이 지나가고 늦게서야 다시 찾았다. 그것도 나이가 들어서 말이다.
수학여행때 흔들바위를 오른 외에는 약 30년만에 이곳을 찾았는데,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인 공룡은 그 생긴 모습이 용과 같다하여 공룡능이라 불려진 이곳, 더 젊었을때 찾았더라면 하고 후회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후회와 함께 탄력을 받아 다시 서북능선을 넘었고 다음 천불동계곡을 다녀왔다.
산세가 너무 아름다워 많은이들이 찾는 이곳은 힘듬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대단함은 우리 삶과 같음을 알 수 있다.
그 능선을 넘는 동안 수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꺼고,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나,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고 넘고 넘고 또 넘는 동안 주위에서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면서 그러기에 머리에 기억이 되어 자주 생각이 난다.
'공룡山' 묘한 감성을 인간에게 안겨주는 산.
역시 설악은 공룡이며, 바위산의 멋이 가득한 산, 한 능선을 오르면 끝나겠지 하지만 다음 능선이 나를 먼발치에서 유혹하며 쉽게는 내주지 않겠다고 하는 자존심을 부리는 산.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바람을 등에 지고 하늘을 날라 뾰족한 봉우리에 앉아 천하를 둘러보면서 자신을 뽐내겠거만, 그런 과한 욕심은 허락하지 않은 도도한 산이 바로 이곳이다.
무엇이 있기에 힘들어하면서도 이 길을 걷고 넘었던, 그 아름다운 산.
그 품에 들어가면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와 들꽃 들을 바라보면서 어쩜 우리의 아픈 구석을 찌르듯, 훈계를 하듯 많은 것을 고쳐주려는 듯 당당하게 서 있는 산. 욕심과 과욕을 버리도록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산
마
때로는 터질 듯한 심장을 달래며, 때론 근육의 피로감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전경에 보여지는 사물의 형태에 금새 앞전의 고통을 잊고 다시 걸어가는 ...
바람이라도 적게 불었으면, 시간이라도 많았으면 조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이곳 구간을 지나가고 난 후 이렇게 바라보니 내가 다시 정상에 오른 듯한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니 이래서 산을 다시오르는 가 봅니다.
많은 상념은 제자리에 꼭 묶어 두고 나오지 못하도록, 내세에 대한 모든 것은 잊어버리도록 철저히 요구하는 아름다운 산. 그저 자신과의 싸움과 자연외에는 용납하지 않는산.
그 길을 다시 가고 싶은 충동이 올해에도 묻어 납니다. 이제는 힘이 들면 힘이 드는 데로 비박 준비를 하고 다시 이 길을 가고 싶어 이렇게 담아온 자신을 올려놓고 다시끔 생각한다.
산에 대한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될적에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공룡이였다.
기대반 걱정반 과연 산행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장장 26키로 겨울산행에서는 14시간을 처음 가면서 많은 걱정도 했는데 역시 산행을 마치는 내내 힘이 들었고, 그 과정은 지금도 하나도 빠짐없이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만큼 힘들었다는 사실.
새벽 3시에 오색에 도착 그당시 오색공원관리사무소 출입은 3시 30분 입장을 하게 되 있는데 30분을 기다리기 힘들어 정상적인 행동을 뒤로 한채 다리옆 개구멍을 통과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캄캄한 밤 도둑고양이 처럼 해드랜턴도 켜지 못하고 진입하느라, 지금도 오색에서 대청봉구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을 할 수 없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
2월 영하 10도를 가르킨 그날 산행이 설악산 공룡의 첫산행, 오르는 동안 칼바람소리, 버꾸기 새벽울음소리, 맑은 공기, 눈으로 인한 미끄러움 등은 나에게는 많은 추억을 가져다 주었다.
세명이 함께한 우리 일행은 남자 둘 여자 한분, 그중에 제일 가볍게 오르는 분은 여자 분, 조금도 힘든 기색이 있거나, 조금도 추워하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부분에서 부터 이미 기가 사라졌다고 할까 아무튼 오르고 또 올라도 대청봉은 보이지 않았다. 숙달된 분은 대청봉까지 3시간 그 다음은 3시간 2-30분 늦으면 4시간 그래도 난 시간을 확인해보니 3시간 10분만에 대청봉에 오른다.
그냥 묵묵히 오르다 보니 눈앞에 대청봉 표지석이 보인다. 순간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지만, 그리 가보고 싶었던 대청봉에 도착하고 카메라를 꺼내려 하는데 날아갈듯한 칼바람과, 손이 금새 동상이 걸릴정도로 얼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분들은 카메라를 꺼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처럼 초보인 관계로 꺼내려 했지만 사진담기를 포기하고 곧바로 중청대피소로 하산한다.
그 당시 중청의 모습 동토의 모습(순간 닥터 지바고 영화가 생각남)처럼 모두가 추위에 덜덜덜....
두 남자는 얼굴을 내 놓지 못하는데 가운데 여자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산을 통해서 난 여성의 끈기와 파워가 크다는 것을 안다.
중청에 도착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 추운 날씨에도 안에는 약 20명 가량이 식사와 추위를 녹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산을 가까이 하기전에는 몰랐겠지만 평소 같으면 잠을 청하는 시간에 이들은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인생은 누구나 함께 하지만 흥분과 도전 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난 우모복을 꺼내서 입고 중청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출발한다.
그 당시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그 뒤로 산과 함께 하는 동안 많은 경험이 쌓이게 되고, 나름 산에 대한 자신을 갖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다. 한번의 어려움이 나에게는 많은 교훈이 되고
자신감으로 이어져 요즈음은 더욱 넉넉한 산행을 하고 있다. 중청을 떠나 무너미삼거리로 진입하면서 놀래기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설악의 자연은 나의 가슴에 찡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산은 오르는 힘듬도 정상에서 보여지는 그 모습을 알기에 산을 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이제서야 왔는가 젊어서 오지 나이가 들어 이제서야 온 것을 후회하면서 그래도 너무 잘왔구나,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즈음 1박 2일에서 보여지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듯이 모두가 이런 아름다운 비경을 바라보면 감동과 흥분을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너기고개에서 부터 마등령사이까지 곳곳의 보여지는 비경은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래서 그해 6월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가고 싶었던 산. 신비의 산, 보여줄려면 이정도는 되어야지, 빼어나듯 솟은 봉우리, 도저히 불가능한 산새 모두가 오고 싶은 산, 그러나 쉽게 내어주지 않는 산, 모두에게 공룡의 겨울 산을 한번 다녀와 보라 권하고 싶다. 그만큼 얻어 가는 것이 많은 곳이다.
오색에서 시작해 대청에 도착하고 무너미를 지나 오르 내리기를 반복 또 반복하면서 점점 지쳐가는 데 마등령은 나오지 않았다. 힘들 게 오르기전 과정은 아주 힘들지만 올라선 순간 보여지는 빼어난 경치는 순간의 힘듬을 잊게 한다. 범봉과 천화대, 세존봉 등은 내내 그 주변과 함께 어우려져 가히 한폭의 한국화를 연상켜 한다.
무거운 카메라 무게를 줄이기 위해 450D에 렌즈는 16-35mm 지금은 후회를 한다. 5d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런 모습으로 공룡을 지나간다.
갑자기 이외수작가의 글이 생각난다.
비를 만나면 뛰지만 눈을 만나면 서서히 걷는다는 말이 문뜩 그만큼 눈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앞에 범봉이 보인다. 1275봉 공룡의 내노라 하고 버티고 잇는 봉우리들..
그 당시 우모복은 무너미고개를 지나면서 벗고 지금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영하 20도는 넘는 추위였지만 위에는 아크테릭스 델타 LT 짚넥과
아크테릭스 감마 MX 후디자켓 2벌만 입고 산행을 했는데 아크의 값어치를 느끼는 산행이였다. 배낭은 캄신 40 바지는 쉐펠폴라택 바지(내의를 입지 않음)
를 입었는데 아래는 전혀 춥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스패츠가 고어인데도 너무 많은 양의 눈이 내려서 그 속을 헤쳐나가느라 등산화속으로
눈이 들어와 도착할 때까지 속에 물이 찼고 그로인해 찌그덧 소리를 내면서 걸었어도 발이 시럽거나 하지 않고 무사히 신흥사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당시 신발은 아쿠제품인데 아주 발이 편하고 지금도 잠발란과 같이 사용하고 있다. ...
제일 문제는 손시러움, 그 뒤로 블랙다이야몬드 제품 고어 장갑(영하 15도 사용이라 제품설명)을 구입했는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거위털로 만든 벙어리 장갑을 사용 등 손시러움에 대응을 하고 있지만
이곳을 올라오는 데 그 당시 이곳에 눈이 쌓여 있어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는 곳
이길을 세번 지나갔다. 올해도 전국산 인기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공룡능선, 이에 대한 시비가 전혀 없을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는 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헬기에 실려간 사람, 사망에 이른 사람,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부지기 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힘듬도 잠시 다시 오고 싶은 산.
1275봉에서 나한봉 가는 길
공룡을 가는 동안 모두가 힘들어 하지만 사실 힘든 곳이 따로 있다. 그 구간은 사진도 없고, 담기도 싫고, 공룡을 간다고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 마등령에서 비선대가는길이다.
급경사를 내려가는 그곳은 정말 마지막 산객들을 완전히 정신적으로 힘듬을 안겨주는 곳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세상을 살면서 호락호락 내어주는 경우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곳으로 가지 않을 수 없고, 아무튼 이 구간이 제일 힘든 곳이라는 것을.
비선대를 벗어나면 더 이상 걷기가 싫지만 또 그곳에서 부터 신흥사 주차장까지 상당한 거리를 가야 한다. 태어나서 아마 제일 많이 걸었던 곳이기도 하다. 속으로 앞으로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곳을 세번이나 지나갔다.
우리네처럼 철따라 옷을 바꿔 입는 산. 정확히 그 시간이면, 그 옷을 갈아입고 나를 기다리는 산. 전혀 흔들림이 없는 산. 과신을 하면 까불면 정확히 잘못을 지적해주는 산.
이 산을 왜 가야 하는지 이런 것을 과거형이고, 이젠 내가 그곳에 있어 내가 품안에 들어가는 것, 그들의 놀이 속에 들어가서 다시 물어보고 싶은산.
난 북한산을 오르면서 리틀 설악산이라 표현했다. 북한산 참 아름다운 산이라는 것을....
세계에서 등산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며, 세계에서 등산객이 제일 많이 몰리는 곳이 북한산이며 기내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난 설악산을 꼽고 싶다. 한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산으로, 물론 제주도 한라산도 있지만...
어떤 글을 읽어보면 산은 내 안방이 아니라 자연의 방에 손님으로 잠시 들른 손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마음가짐과 행동을 예의있게 산을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와 달리 많은 인식이 변해 그래도 깨끗하지만 간혹 보이지 않은 구석에 놓인 쓰레기들을 보면 마음이 아픈 경우가 있다. 이제 우리도 국력이 높아진 만큼 산을 우리 가슴처럼 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왼쪽 봉우리가 1275봉 좌측 검게 우뚝 쏟은 능선이 마등령
자연과 함께, 자연처럼, 자연이 주는 행복은 바로 이곳에서 처럼 강렬하게 느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바위사이를 뚫고 내미는 소나무나 야생화 등을 보면서 그 끈기력을 항상 닮고 싶다. 모든 것이 다 신비스럽지만 우리 사람들보다더 그런부분은 훨 나은 것 같다. 어차피 이곳을 오고자 하는 사람들은 힘듬은 각오하고 오듯이 모든 사람이 자연의 생명력을 산을 통해서 느끼고 돌아간다면 하는 바램이다. 나 또한 그렇다.
인생도 따지고 보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미완성의 여로와 같은 것이라며, 그날 그날 일상생활에서 느껴지고 깨닭으며,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난 이 능선을 넘는 동안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산은 많은 것을 뒤돌아 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그동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때로는 떠나고, 또 인연이라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도 만나게 되고, 도대체 모든 것을 알 것 같지만 그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내 인생이라면, 이 설악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의리라는 것으로 젊은시절은 친구들과 지내느라 집사람에 대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고, 친구라고 하면서 모든 것을 나눌 것 같은 그런 사람들도 이런 저런 문제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들도 있었을 거고, 이래 저래 사연들로 인한 인간관계로 후회와 반성도 하고, 한때는 지위지향적으로 공부하느라 정신이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열심히 노력해 가서보니 그 또한 허망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부터 산에 더 찾게 되었다.
인생속에 한부분은 빵의 해결을 위한 나 스럽지 않은 일들을 이제서 보면 참 부질없었다는 느낌과 동시에 나름 삶을 재정립 하는 사긴을 많이 갖게된다.
그렇다면 산은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산에 대해 겁없는 도전은 용납을 하지 않고 사고로 이어지는 것 등은 우리의 잘못이 크기에 일어나는 일들이라 생각된다.
집사람과 같이 산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내성적인 이사람이 산에 오면 시인이 되고 20대처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이 술술 등장한다.
인위적이 아닌 저절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
두사람의 관계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값어치 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물론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 가끔은 다툼이 있겠지만 그런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전 이런 내용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 아내, 자식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건져 내겠느냐는 질문 어쩜 황당한 질문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난 아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교사상을 가진 우리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아내부터 건져 내고 두번째 자식을 세번째 엄마를 구한다는 것 물론 이게 전부맞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사고와 차이가 많을뿐더러, 난 이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소중함.
신과 가까이 하면서 성철스님의 글이 가끔 생각난다. 그 분이 남긴 글속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어서 이다.
어머니를 따라서 온 꼬마가 그 어려운 삼천배를 할 줄은 전혀 모르고 왔다가 삼천배를 하게 된다. 삼천배를 마친 그 꼬마는
"큰스님, 이제 다시는 백련암에 안 올 겁니더."
"와 그라노?"
내가 앞으로 백련암에 다시 오면 개새끼라예."
"와 그라는데?"
"삼천 배 절 하는 기 너무 힘들었어예, 백련암에는 인제 다시 온 올겁니더."
"그래그래, 개새끼인지 아닌지는 도고보자."
딴에는 독한 소리를 마친 꼬마 친구가 일어나 방을 나가자 큰스님은 웃으셨다.
"그래도 그놈 대단하재, 지 할 소리는 다 하고 갔제."
그런데 얼마 뒤 다시느 안 온다던 그 꼬마 친구가 다시 백련암을 찾아왔다. 물론 어머니의 손에 끌려왔ㅈ만 나름의 독한 다짐을 했던 꼬마인지라 시무륵하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큰스님이야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니, 그때 안 온다던 그 개새끼 아이가."
그 친구도 이제는 중년의 치과의사다. 이처럼 우린 앞날을 알 수 없는 경우이다. 산이 힘들고 올라서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찾는 곳이 바로 산이 아닌가 한다.
약 6년전부터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중성지방이 높은 것도 있지만 많은 글들을 읽어보면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어.
여기에서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비박산행이나 산을 가까이 하시는 분들은 보면 고기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때는 78키로의 체중이였는데 지금은 69-70으로 왔다 갔다 한다. 고기를 먹지 않아서 체중이 빠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힘든 산행을 해도 아직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아침식단은 생식겸 한다. 야채(케일, 양배추, 당근)와 과일(바나나, 사과, 방울도마토, 단감 등)외에 저지방우유200ml에 선식을 타서 마신다. 그런 다음 호도와 땅콩류를 꼭 빠트리지 않고 먹는다. 이게 아침식단 그러고 보니 가지수가 많은데 점심까지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을 보면 적은 양은 아닌 것 같고 그러나 집사람에게는 미안하다. 이 사람은 고기를 좋아 하는 데 나때문에 고기를 가까이 할 수 없으니.........
아무튼 지금은 그렇게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데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비박을 하게 되면 나 또한 고기를 조금씩 섭취를 하려고 하지만
앞에 우뚝쏟은 봉우리가 범봉 오른쪽 저멀리가 울산바위
겨울 산행때와 달리 6월에 모습은 녹색의 향연이 시작된다.
새옷을 단장하고 있는 이곳을 다시 넘어가는 데 겨울 산행에서 상고대를 보면서 눈꽃산행을 한것과 달리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고.
이렇게 조경을 할 수도 없지만 이 자연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할텐데 지나가는 동안 난 돈을 배낭에 듬뿍 담아서 간다.
그리고 맑은 공기로 숨을 쉬며, 보이는 아름다운 강산 설악산의 풍경을 이렇게 눈으로 감상하는데 어느 명화도 여기에 보여지는
장면을 만들어 내거나,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스크린에 비춰지는 아름다움을.
2010.3.3 설악산 눈사태로 등산객 2명 실종 1명 시신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이 난다. 산은 가끔 이런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이어진다. 그구간이 마등령 제2쉼터에서 부터 산기슭 쪽으로 1km떨어진 지점이다.
산은 곧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이날도 눈이 많이 쌓여 약 3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 뒤 왼쪽이 대청봉, 중청에서 잠시 아침식사를 한 후 무너미로 진행되는 동안에 뒤에서 부터 해가 뜨기 시작한다. 산꾼들이 일출을 바라보고 있다.
오색매표소에서 2번 신흥사에서 1번 한계령에서 1번을 종주산행을 하면서 그래도 오색에서 오르는 코스가 제일 편안하다.
앞에 보이는 오색에서 새벽4시경 출발하면서 상쾌한 공기와 주변의 새소리 바람소리 등을 항상 잊지 못한다. 가쁜숨이라도 해도 좋다 내 폐 깊숙이 스며들어가는 청량의 공기가 나를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단단히 하는데 비싼 병원의 산소마스크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좌측에서 오르면 정상은 약 3시간 10분에 올랐다. gps측정을 해보니 정상까지 평균시간이다.
새벽에 오르는 경우는 조금 힘듬이 덜하다 나만 그런가 생각하니 집사람도 그렇다고 답한다. 내앞에 웅장히 펼쳐지는 설악산은 언제나 가고 싶은 충동을 나에게 계속 던지고 있다.
갈림길에서 마등령까지는 비경을 바라보며 걷지만 그래도 체력적으로는 힘듬을 호소하는 산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지만 이 고개를 넘고나면 모두가 환희와 완주의 쾌감을 느끼곤 돌아간다. 사회속에서 생활하며, 항상 설악산 공룡능 산행은 전혀 잊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그러나 마등령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마등령에서 부터 내려꽃히는 마의 구간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이곳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마등령에서 소공원으로 내려가는 하강코스에서 정말 무릎에 대한 무리가 가해지므로 천천히 천천히 진행해야한다. 그래도 공룡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좌측에 보이는 능선이 용아능이다. 내가 그리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없다. 아직도 고공 공포증으로 인한 위험한 곳은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명 가이드가 인속을 하면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하는 코스.
대청봉에서 바라보니 귀때기청봉이 보인다.
빨간 표시가 비박을 하는 지점인데 역시 텐트및 취사가 허락되어져 있다고 하지만 산이란 항상 어려움이 따르고 한데 이 규정이 꼭 지켜지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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