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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스키장과 향적봉스케치

일상스케치

by artyou 2008. 2. 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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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스키장과 향적봉 스케치

 

 

 

 

 2008년 2월 7일 항상 무주스키장과 향적봉 산행을 하면서 아이들과

시간이 나면 같이 여행을 떠나곤한다.

 

어쩜 거짓이 없고 있는대로 표현되어지는 게 가족이지 않나 싶다.

 이 아이들이 있어 난 더욱 행복함을 느끼면서

틈이 나면 아이들과 항상 여행을 떠나려 한다.

 

삶이란 만들어 간다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이 아이들이 성장하도록 조용히 뒤에서 받쳐주고,

가르쳐 왔는데 어느덧 성장해서 나에게 훈수를 둘때면 더욱

대견스럽다.

 

꼬마들이 어느덧 이렇게 성장하여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견스럽다.

 

나의 과거의 시간들이 이아들속에 같이 묻혀 있을 것이다. 

 

우뚝 성장한 아이들

 그 아이들을 통해서

난 또 나의 소속감을 느끼곤한다.

 

 평소에 예술을 좋아하는 성격을 가져서 그런지 굳이 잔소리를 하지 않고 

아이들이 하는대로 놓아두고 스스로 성장하도록 한게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한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과 허물없이 터놓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이라는 울타리를 치지않고, 그냥 칭구처럼 대해준 것이

지금에 이른 것 같다. 

 

무주는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즐기려 오고,

그속에 우리아이들이 이렇게 턱 버티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스럽고 행복감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무엇이든 잘하는 두아이들과

큰딸도 보드실력이 갖추고 있고, 넘어지면 서로 감싸면서 스키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니

참으로 보기 좋아 흐뭇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아니 아름다워 그 순간, 넋을 놓고 바라다보았다.

 

이 블로그는 남에게 자랑하는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나의 흔적을 이곳에 모두 기록해 두고자 기록으로 남긴다.

 

블로그는 어느곳에서든 작업과 수정이 가능하며,

좋은 자료들을 간직하고 필요하면 꺼내볼 수 있여 참으로 좋은 것 같다. 

 

 

 

 

 

아이들이 눈이 너무 좋아 햇볕에서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그래서 눈이 전부 작게 나온것 같다.

 

큰딸과 큰아들

 

 

 

 

 

 

 

 

 

 

 작은 아들과  두녀석 다 185센티키에 듬직한 모습이다.

 

 

 

 

곤도라를 타고 덕유산 향적봉을 향하기 전 휴게소에서 담아본 큰딸의 모습

 

평소에 사진작업을 하면서

특히 인물과 풍경을 대상으로 포커스를 맞췄지만 오늘은 큰딸을 모델로 삼아

자유스러운 포즈를 연사로 순간 순간 담아봄.

 

사진이 주는 매력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라고 본다.

사진에서의 딱딱함은 더욱 그러하다.

 

나는 딸에게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게끔 주문하고 난 후 

그 모습을 계속적으로 타임샷과 노출샷으로

 

병행해 가면서 인체에서 묻어나오는 아름다움을 순간순간 담아봄.

 

 

 

멋진 포즈로 항상 다가오는 큰애의 사진을 앵글로 포착할때마다 즐겁다

 

사진이란 인물이등 풍경이든 대상이 가져다 주는 매력에 푹빠져

작업을 진행할 경우가 많다. 이럴때 일수록 더욱 신이 나 즐거움을 동반하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풍경에서는 일출과 일몰의 모습에서 다양한 샷으로 아님 감각으로

담아오고 있는데 그래도 제일 아름다운 것은 인물에서 얻어지는 감각적인

매력이 더욱 많이 느끼곤 한다. 시간이 더욱 허락한다면 사진과 함께 하는

여행을 더욱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 ........

 

 

 

 

 

 

 

향적봉 정상에서 바라본 산아래 모습들

 

 

 

 

 

 향적봉 정상에서 담아본 작은 아들 바쁘게 서둘지 않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작은애

이녀석은 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나보다 더 좋은 면이 많은 것 같다.

 

 

 

 

큰애의 매력은 사람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착함이라고 할까. 두녀석들 

내가 그리 강하게 주문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담배를 금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식이란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저 말없이 성장하고, 동생에게 한번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고 않고 지금처럼 아름답게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두녀석들이 서로 감싸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

또 큰딸과 작은딸의 참여속에서 이 세상을 함께 개척하고 서로 감싸고 하면서

가도록 옆에서 바라보고 알려주고 하면서 난 내길을 가련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멋진 포즈로 보여주는 큰애

 

 

 

 

 

 

 

 

 

 

 

 

 

모습을 앵글로 담는 갑각은 큰애가 더 있는 것 같다. 항상 좋은 사진을 이렇게 담아준다.

 

 

 

 

 

 

 

 

 

 

 

 작은 아들 여자칭구인 작은 딸이 공부 때문에 같이 참석못해

참으로 아쉽다. 이제 짝들도 다 만났으니 걱정이 이제 없다. 

 

4월이면 작은 딸 문제가 해결되면 이속에 또 다른 딸의 모습이 함께 할 것이다.

은영아 열심히 해서 좋은 결괄를 보여주려므나.  화이팅

 

 

 

 

 

 

 

 보드 장비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 보드실력이 참으로 좋다. 큰딸 은혜도 보드를 제법 잘탄다.

아빠도 그날 실력이 참으로 많이 늘었는데 중급자는 그전에는 피했는데 

 

 중급자코스를 활강하니 더욱 즐거웠다.  너희들이 아빠를 감싸고 상래가 아빠

실력을 늘도록 코치해주어 감사하구나. 시간이 나지 않아 스키장를 찾지 못했는데

주말이면 작은애하고 같이 계속 무주에서 같이 즐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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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과 작은 아들 모습 이날 큰애가 야간 스키시간에 사진을 담당함.

 

 

 

 

 

 

 

 

 

 

 

 

 

 

 

 

 

 

 

 

 

 

 

 

 

 

 

 

 

 

 

 

 

 

 

 

 

 

 

 

16-35미리 two로 잡은 사진 곤도라안에서

 

 

 

 

 

 

 

 

 

 

 

 

 

 

 

 

 

 

 

 

 

 

 

 

 

 

 

 

 

 

 

                                                                 서재에서 사진을 편집하면서  저녁 갑자기 약속을 요청하는 분이 있어

잠시 만나고 난 후 에는 하루종일 사진을 편집했다.

 

관심을 이렇게 많이 가질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신이내린 큰선물이라고 본다.

 

 

한참을 즐거워했다. 서울에 올라가는 아들의 전화와 은혜가 사진과 음악이 너무 좋아요. 

하는 말에  은혜가 좋아하는 것 같애서 설명과 함께 다시 올린다.

 

항상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은혜을 볼때마다 많은 생각을 해본다. 

항상 웃음으로 다가오는 큰딸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제일 좋아 하는 글과 항상 아침이면 대하는  "처음처럼" 

마음이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큰딸로 거듭 나길 바라면서

 

이렇게 예쁜 딸을 나에게 보내준 어머니에게도 거듭감사를 드립니다.

 

 

음악을  그리 좋아 하던 내가  오늘은 학창 시절 특히 중학교에서 부터

음악에 빠져 부모에게 혼이 나면서 까지 들었던 많은 곡중에서 비틀즈 곡을 선별했다.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처럼 젊음이 있었고 지금도 그 절음은 내게서  항상 떠나지 않고 있으며,

영원히 아름다운 음악과 난 내가 가고자 하는 그길을 가련다.

 

그시절 너무 많이 들엇던 비틀즈음악을 들으면서 마냥 즐거워했던 기억이 생생이 난다.

음악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같을진대 우리 아이들도

항상 음악을 가까이 대하는 감성이 존재했음 한다.

 

내가 젊은 시절 모두가 어려워했던 시절에 난 지금처럼 마음껏 해보지 못한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른 가정보다는 넉넉했다고 주위에서 이야기 하였지만 항상

개척정신이 강했던 나에게 그리 많은 것이 그시절 존재하지 않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젊은 시절 불편함을 느꼈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것들을 나의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갑지가 비틀즈의 이메진이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대학시절 많이 들었던

비틀즈 곡을 오랫만에 듣고 싶어서 올린다 .

 

(동영상을 보고자 할대는  아래 곡을 중지 후 감상)

 

 

 


비틀즈

 

비틀즈

비틀즈의 로고
기본 정보
국가 영국
활동시기 1960년 - 1970년
1994년 - 1996년(레논 없이)
장르
웹사이트 http://www.beatles.com/
구성원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더 비틀즈(The Beatles)는 멤버 전원이 영국 리버풀 출신인 록 밴드이다. 비틀즈의

노래는 발라드, 레게, 싸이키델릭, 블루스에서 헤비메탈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데

이는 현대 음악 스타일의 장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비틀즈의 영향력은 단순한 음악 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의 사회 및 문화적 혁명을 야기하였다.

 

비틀즈는 20여 곡의 미국 차트 1위곡을 포함하여 50여 곡 넘는 톱 40 싱글들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만 1억 6백여 장[1], 전 세계적으로 10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2]하는 등,

기록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비평가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밴드"로 불리어 지고 있다.[3]

"The Fab Four"라 불리는 비틀즈의 구성원은 존 레논 (John Wins

ton Lennon, 1940-1980),

폴 매카트니 (James Paul McCartney, 1942-),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2001),

 링고 스타 (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논과 매카트니는

 밴드의 주요 곡들을 작곡했으며, 해리슨은 후기 비틀즈에 큰 공헌을 했다.

처음 비틀즈가 레코딩을

 

시작한 이래,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모든 곡 레코딩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맡아왔다. 이러한 이유로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음악적 성장에 있어 중대한 자리를 차지했다.

비틀즈는 1963년 말 영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비틀즈에 감명 받은

어린 여성들(일종의 오빠부대)을 주목할 만 하다. 이 현상은 영국 언론들에게

 "비틀마니아"(Beatlemania)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비틀마니아는 1964년 초에 북미에 상륙했고 이후 비틀즈의

인기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략)이라 하여, 비틀즈는 미국의 초기

로큰롤R&B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칼 퍼킨스와 같은 백인

음악가들과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레이 찰스, 레리 윌리엄스와 같은 흑인 음악가 양 쪽 모두에게 칭송받았다.

비틀즈 스스로의 작곡은 비틀즈

 

멤버 자신들이 영웅시하는 음악가들의 양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얼마 후

비틀즈는 그들 특유의 타고난

음악적 악상을 바탕으로 비틀즈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5년동안 그들의 음악은 단순했던

 

초기 히트곡들(예를 들어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에 비해 예술적인 꾸밈같은 것이

 상당히 풍부해졌다.(앨범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Abbey Road에서 처럼.) 그들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스튜디오 레코딩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들은, 전례 없는 질의 레코딩을 발표하는

모든 곡들에 선보였고, 비틀즈는

동시대 팝 뮤직보다 앞선 효과들을 적용시켰다.

 

 

비틀즈는 1970년 공식 해산되었다. 이후 35년 후인 2005년 미국의 연예산업잡지 버라이어티는 비틀즈를

20세기 연예인의 대표 우상(icon)이라 표현하였다.[4]

[편집] 밴드 멤버

존 레논, 1969년
존 레논, 1969년
  • 존 레논 : 보컬, 리듬 기타 - 때때로 하모니카, 키보드, 베이스 기타 및 기타 악기 (1960-1970)
  • 폴 매카트니 : 보컬, 베이스 기타 - 때때로 기타, 키보드, 드럼, 프루겔 혼 및 기타 악기 (1960-1970)
  • 조지 해리슨 : 보컬, 리드 기타 - 때때로 시타르, 탐부라, 베이스 기타, 키보드 및 기타 악기 (1960-1970)
  • 링고 스타 : 드럼 - 때때로 보컬, 작은북, 키보드 및 기타 악기 (1962-1970)

[편집] 전 멤버

 결성 (1957년 - 1960년)

[쿼리맨의 결성

1957년 3월, 쿼리 뱅크 그래머 스쿨을 다니던 존 레논은 "쿼리맨"(The Quarrymen)이라는 스키플 그룹을 결성한다.[5

] 1957년 7월 6일, 레논과 쿼리맨은 기타리스트 폴 매카트니를 울튼이라는 교회 축제에서 만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폴 매카트니는 쿼리맨에 합류하게 된다.[6]

 조지 해리슨의 합류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리버풀 인스티튜트의 학교 버스에서 만나 친해졌고, 폴

매카트니는 1958년 2월 6일, 리버풀의 윌슨 홀에서 열린 쿼리맨의 공연에 조지 해리슨을 초대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된 매카트니의 설득 끝에, 해리슨은 1958년 3월, 다른 멤버들 앞에서 리허설을 마친 후

 쿼리맨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했다. 당시 레논은 해리슨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가입을 거절했다고 한다.[7

] 쿼리맨의 구성원은 계속적으로 변했으나, 레논과 그의 친구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베이스), 매카트니,

해리슨을 주축으로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8] 당시 이들이 부른 노래들의 녹음 자료 몇 개는 아직도 남아있다.

"비틀즈"의 탄생

비틀즈가 공연했었던 독일 함부르크의 인드라 클럽
비틀즈가 공연했었던 독일 함부르크의 인드라 클럽

쿼리맨이란 밴드의 이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니 엔 더 문독스"(Johnny and The Moondogs)

, "롱 존 엔 더 비틀즈"(Long John and The Beatles), "더 실버 비틀즈"(The Silver Beetles) 등으로 바뀌어갔다.

이들은 1960년 8월 17일 마침내 "더 비틀즈"(The Beatles)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비틀즈라는 이름과 그 흔치 않은 표기(Be"a"tles)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대체적으로

이 이름은 레논이 지었다고 여겨지는데, 레논은 비틀즈라는 이름이 "딱정벌래들"(beetles;

이는 버디 홀리의 밴드 크리캣츠(The Crickets; 귀뚜라미들)를 따라한 것으로 추정된다)과 "beat"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장난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한 레논은 후에 "Beat-less"를 변형해서 만든 것이라 얘기하기도 했다.

신시아 레논은 존 레논이 "비틀즈"(Beatles)라는 이름을 "랜쇼 홀 바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로서 정했다고 주장했다. [9] 신시아에 따르면 존 레논은

그 장소에서, 'les beat'와 같은 "프랑스어 느낌의" 이름을 정하자고 제한하기도 했다고 한다.[

9]

후에 존 레논은 한 잡지와의 1961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농담하기도 했다.

 "불타는 파이(flaming pie) 위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오늘부터 당신들은 "A"를 쓰는 비틀즈다!'(From this day on you are Beatles with an "A".)"[10]

 (후에 레논의 이 얘기는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 《Flaming Pie》의 제목과 동명의 곡에 영향을 주었다.)


음악적 분석

 영향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는 주로 다음 가수(그룹)에게 영향을 받았다.

  • 엘비스 프레슬리 - 비틀즈는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많은 수의 엘비스 커버를 녹음했다.
  • 또한 도큐멘터리 앤솔리지에서 비틀즈의 멤버 4명은
  • 프레슬리를 스승(guru)라 칭한 바 있다.

 

  • 척 베리 - 비틀즈는 "Roll Over Beethoven"이나 "Rock and Roll Music"과 같은 척 베리의 노래를
  • 그들의 초기 앨범에 수록했었고, 라이브로 공연한 적도있다. 레논이 처음 베리를 만났을 때,
  • 레논은 "척 베리! 당신은 내 영웅이에요!"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도 있다.
  • 비비 킹 - 킹은 비틀즈에 블루스적인 성격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향은 "Get Back"이나 "
  • I Me Mine"에서의 해리슨의 기타 연주에서 발견할 수 있다.
  •  
  • 버디 홀리 - 초기에 영향을 미쳤다. 비틀즈는 "Words of Love"를 레코드 한 적 있다.
  • 또한 비틀즈라는 이름이 홀리의 배킹 그룹 크리켓츠(The Crickets)에서 왔다는 것은 이미 널리
  •  알려진 바이다.
  •  
  • 스튜어트 서트클리프가 Beetles를 제안했고, 레논은 이를 Beatles로 살짝 변형했다.
  • 밥 딜런 - 특히 1965년부터 영향을 미쳤다.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Help!),
  •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Rubber Soul)과 같은 곡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  딜런은 뉴욕의 호텔방에서 비틀즈에게 마리화나를 처음 소개시켜 준 사람이기도 하다.
  •  
  • 에벌리 브라더스 - 레논과 매카트니는 돈 에벌리와 필 에벌리의 독특한 이중창을 모방했다.
  • "Love Me Do"나 "Please Please Me"는 에벌리의 "Cathy's Clown"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  "Two of Us"는 완벽한 에벌리 스타일 노래였다.
  •  
  • 초기 모타운 음악 - 비틀즈는 초기에 배럿 스트롱의 모타운 레코딩인 "Money (That's Wat I Want)"
  • 마블릿츠의 히트곡 "Please Mr. Postman"을 카피한 곡을 앨범에 수록한 적이 있다.
  •  
  • 리틀 리처드 - 초기의 몇몇 곡들은 리처드의 "Long Tall Sally"에서와 같은 가성 스크림이 등장한다.
  •  1962년, 리처드는 함부르크에서 비틀즈와 교제한 적 있으며, "Long Tall Sally"는 초기 비틀즈
  •  콘서트에서 꾸준히 등장했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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