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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를 만나면 통념이 깨진다. 상표나 로고 처리 하나만으로도 파타고니아는 우리를 놀라고 실소하게 한다. 통념이 깨어져나간 빈 자리는, 경우에 따라서는 간혹 감동이 채우고 들기도 한다.
파타고니아 의류에서 상표는 언제나 작으며, 태반은 보일 듯 말 듯하거나, 아니면 잘 안 보이게 감추었다. 어떤 티셔츠는 하단에 붙여, 바지 안으로 넣으면 전혀 뵈지 않는다. 가슴에 붙인 어떤 로고는 바탕색과 같은 색으로 처리해 자세히 들여다봐야 겨우 드러난다. 바지는 벨트선에 로고를 새겨놓아 벨트를 차면 가려버리기도 한다.
창업자 이본 취나드 회장은 이에 대해 그의 자전적 경영철학서인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Let My People Go Surfing)>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제품은 먼 발치에서 봐도 물건을 만드는 솜씨와 성의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선승(禪僧)의 말을 흉내내자면, 진짜 파타고니아 물건은 상표를 떼어도 상관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엄청난 자부심은 그러나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파타고니아는 최근까지 10여 년간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아웃도어 의류 매출액 1위를 지켜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본 취나드가 스스로 밝힌 제품 철학은 매출과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많이 파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혹은 “더 적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Buy less, buy better)”라고 그는 말한다. ‘물건을 팔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는 통념에 정반대로 반하는 것 같은 신념이다. “그러나 실은 이런 일견‘터무니 없는’ 제품 철학이 파타고니아가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의류로 자리 잡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전영재 파타고니아코리아 사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페트병 재활용 재킷으로 세계적 화젯거리 되기도
원단 제조부터 염색, 의복 제작, 판매, 소비자의 보관, 폐기에 이르기까지 의복의 라이프 사이클 중 다림질이나 뜨거운 물 세탁, 드라이클리닝 등 소비자의 사용ㆍ보관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악이 다른 사이클의 무려 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취나드는 어떻게든 찬 물에도 잘 세탁되고 빨리 마르는 재질의 소재를 찾아냈다. 물론 등반 등 야외스포츠에는 기막히게 좋은 기능이다.
파타고니아는 96년부터 면제품도 100% 유기농 재배한 면만 사용한다. 이본 취나드 회장이 직접 면 재배를 해본 뒤 농약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다. 최종적으로 목화솜을 거두기 직전에조차 잎을 떨구기 위해 고엽제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취나드는 100% 유기면 사용을 선언했다고 한다.
이본 취나드의 이 미련하도록 철저한 친환경, 친인간주의 또한 결과적으로는 매출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철저히 무공해인 의류를 만들기 위해 원가가 예전에 비해 많이 들었음을 고객들에게 알리고 제품 가격을 대폭 올렸지만 그것이 또한 파타고니아만의 특장점으로 크게 어필한 것이다.
‘친환경 파타고니아’의 절정은,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페트병을 재활용한 재킷’이다. 페트병 재생 폴리에스터 값이 석유에서 바로 뽑은 폴리에스터보다 비싸지만, 파타고니아는 93년부터 페트병 재활용 재킷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조모직 재킷 150벌을 페트병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만들면 42갤런(약 160리터)의 석유를 절약하고 독가스 배출을 0.5톤 줄일 수 있다는 데서 내린 결정이다. 최초의 페트병 재생제품인 신칠라 스냅티는 지금도 나오고 있으며 여전히 인기다.
환경기업가 이본 취나드는 이제 ‘자연스러운 성장률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었다. 고객들이 물건을 사고 싶은데 재고가 없다고 불평을 하면 더 만드는 것, 그것이 취나드 회장이 정의하는 자연스러운 성장률이다. 그러므로 대대적인 TV 홍보캠페인이나 사회적 유명 인물을 동원한 이른바 스타 마케팅에도 아예 무관심이다. 10대나 20대 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홍보를 거의 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운 성장’을 위해서다.
“이미지 광고로 현혹하면 파타고니아 의류의 실질적 기능보다는 이미지에 이끌려 사게 되죠. 그러면 필연적으로 제품을 오래 쓰지 않고 버리게 됩니다. 매출이 급신장했다가 뚝 떨어지는 어느 날 생길 엄청난 재고도 마찬가지겠구요. 파타고니아 의류가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 아니면 사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전영재 사장은 의식이 거의 이본 취나드 2세라 해도 좋을 정도로 흡사한 것 같다. 그간 무려 130여 한국 업체가 파타고니아 한국 판매권을 얻으려 본사를 찾아갔으나 여전히 전 사장과의 거래를 고수해주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파타고니아 제품은 (주)안나푸르나 전병구 회장이 최초로 수입 판매했고, 몇 해 전 아들인 전영재 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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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파타고니아 매장(무교점). 걸어두면 후줄근하나 일단 입으면 더 없이 편한 것이 파타고니아 의류의 특징이라고 전영재 사장은 말한다. /2 파타고니아 등산화. 파타고니아는 등산화에도 어떻게든 본드를 적게 쓰려고 애쓴 기미가 역력하다. /3 H2No방수막을 사용한, 여성들에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레인섀도 재킷을 들쳐보고 있는 전영재 사장과 무교점 공선경 매니저. /4 이본 취나드 회장은 암벽용 하켄을 만드는 대장장이로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종종 하켄 두들기기를 즐긴다. 옆의 파타고니아코리아 전병구회장과는 산악인 인연으로 절친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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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하면 거부 될 텐데 그냥 개인회사로 두는 이유
현재 파타고니아코리아 매장은 전국에 모두 7개로, 파타고니아의 명성에 비하면 뜻밖으로 적다. 그러나 입소문을 통한‘자연스러운 성장’을 기다릴 것이며, 그러므로 당분간은 점포가 늘어도 10개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 사장은 밝힌다. 중간도매상을 거치면 소비자값이 높아지므로 철저히 직매장만 낸다고 한다.
일본의 연간 매출이 1,500억 원인 데 비해 파타고니아코리아의 매출은 아직 연간 40억 원이 채 안 되고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 그러나 전 사장은 오래지 않아 파타고니아의 진가를 알아주는 고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파타고니아는 순수익이 아니라 매출액의 1%를 환경단체에 지원한다는 원칙을 아무리 어려운 때라도 지켜왔으며, 파타고니아코리아도 마찬가지다.
파타고니아는 아직도 개인 회사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했다면 아마 취나드는 엄청난 거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의 부인, 그리고 동업자 한 사람까지 세 명 명의의 개인회사로 유지하고 있다. 상장하면 주주들이 좀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며, 그러면 파타고니아의 근본 원칙이 흔들릴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본 취나드 회장은 자가용 차를 20년째 바꾸지 않고 있다. 오래 되어 도색 페인트가 갈라지고 조각난 그런 차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파타고니아란 기업과 제품의 매력, 장점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미국 명문 예일대 MBA 과정의 교재로 채택되기도 한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면 파타고니아란 기업의 존재, 그리고 파타고니아 매출 1위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그렇다. 파타고니아 본사는 파도가 좋으면 일은 제쳐두고 일단 서핑을 즐겨도 되는 근무시간 자유선택제다. ‘직원들이 출근할 때 신이 나서 절로 두 계단씩 뛰어올라가게 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이본 취나드 회장의 꿈은 현실이 된 지 오래다. 파타고니아사는 자리 하나가 나면 입사 경쟁율이 평균 900대 1이다.
이본 취나드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사람이다. 북한산 인수봉의 취나드 A, B 루트는 바로 그가 1963년 한국 파견 근무 때 한국 산악인 선우중옥씨 등과 더불어 개척했다. 78년 한국산악회 안나푸르나원정 대장을 맡아 성공으로 이끈 전병구 회장이 파타고니아 제품을 수입하게 된 것도 이런 산악인 인연이 닿아서였다.
에피소드 한 가지. 조시 부시 대통령이 파타고니아 재킷을 입고 TV에 나왔을 때 파타고니아 상표가 그대로 비쳐졌다. 상식적으로 보아선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올린 셈이겠는데, 부시는 이본 취나드에게 환경에 관한 한 최악의 대통령이었다. 취나드는 파타고니아 이미지 다 망친다며 노발대발,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다음부터는 꼭 모자이크 처리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대개 패션업계에선 섬유로 디자인을 시작해서 용도는 다음에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어떤 기능을 하는 의류를 만들 것인가를 가장 먼저 결정한 다음 디자인을 하고, 적합한 소재를 찾죠. 그렇게 접근하니까 기상 조건만 비슷하면 어떤 스포츠에서든 입어도 좋은 옷이 탄생하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히 등반용 재킷으로 사서 스키 탈 때도 입고 시내에서 눈 오는 날 덧옷으로 입을 수도 있으니 좋은 거죠. 더 적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말, 그러니까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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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파타고니아 상표와 로고. 파타고니아는 상표나 로고를 보일 듯 말듯 작게 쓴다. ‘상표가 없어도 파타고니아 옷은 알아볼 수 있다’는 자부심의 강한 표현이다. /2 파타고니아의 상징적 제품인 신칠라 스냅티. 파타고니아는 페트병 25~45개를 재활용해 이와 같은 옷 하나를 탄생시킨다. /3 고객이 10여 년 입고 나서 재활용을 위해 반품한 바지를 들어보이고 있는 파타고니아코리아 전영재 사장. 파타고니아 마니아들 중에는 오래도록 입어 나달나달해진 옷도 자랑스레 입고 다니는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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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천천히 닳게 옷을 만들어라!”
이본 취나드는 자신의 제품 디자인 철학을 몇 가지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했는데,‘얼마나 기능적인가, 다기능적인가,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 최대한으로 단순화되었는가, 관리와 세탁이 쉬운가’등이다. 이본 취나드는 이렇게 술회한다.
‘옷감은 멀쩡한데 고무줄이 늘어나 못 입게 된다거나 하는 제품은 파타고니아에선 일종의 죄악이다. 파타고니아는 어느 곳이 먼저 닳는지 체크한 다음 그 부분을 강화하고, 그 다음으로 먼저 닳는 데를 찾아내서 또 보완하고 해서 제품이 골고루 닳는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테스트한다.’
결국 달리 말하면, ‘옷 하나를 사서 거의 일년 내내, 그리고 몇 년씩 입도록 하자’다. 기능과 성능을 최고로 추구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그런 것엔 절로 눈이 가고, 일단 가지면 애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결국 파타고니아 의류는 거의 내는 것마다 대박을 터뜨려, 아웃도어의류 부문에서 오랜 기간 세계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던 것이다. 파타고니아 고객 중엔 파타고니아 바지며 재킷을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자랑스레 입고 또 입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파타고니아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 아웃도어 의류에 적용한 기능이나 소재는 부지기수다. 1980년 가벼우면서도 물기를 머금지 않는 폴리프로필렌 내복을 업계 최초로 출시했고, 보풀이 전혀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양면 원단 신칠라(Synchilla)를 개발했다. 땀을 잘 배출해주는 한편 속건성인 캐필린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또한 대히트를 쳤다. 번데기를 연상시키는 다운 스웨터도 99년 파타고니아가 처음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타고니아가 개발해 스프레이마스터 재킷 등의 제품에 적용중인 소재 H2No방수막은 사방으로 신축되는, 방수투습성 소재 중 세계 최첨단의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1990년대 들어 이본 취나드 회장은 지구 환경에 새롭게 눈을 떴다. 92년 10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해 1,700명의 과학자들이 서명한, ‘우려하는 과학자연맹’이 발표한 지구의 상황에 대한 성명서를 접하고서다. 그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암 발생율이 급상승하고 있음도 알았다. 그 후 그는 파타고니아 전 제품의 전 공정에서 무공해, 혹은 환경오염 최소화에 진력했다.
대개 가죽 무두질은 화학약품을 써서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가죽을 가공할 때 ISO 14001 인증을 받은 천연 무두질법을 쓴다. 울 제품은 단백질 성분 때문에 세탁시 수축이 심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대개는 독한 염소 처리를 하는데 파타고니아는 미련스럽도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물을 이용한 슬로 워시(slow wash) 시스템으로 처리한다. 울 원사도 농약을 최소 3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사료를 먹인 양에서 취한 것만 쓴다. 이러하기에, 파타고니아 옷은 간혹 육안으로는 거칠어 보여도 실은 매우 고급 의류라고 전영재 사장은 말한다.
셔츠의 단추는 종종 쪼개져 나가는 코코넛 껍질을 많이 쓴다. 모든 의류업체가 염색 후엔 물이 안 빠지게 하는 염착제 처리를 하는데, 파타고니아는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하지 않는다. 그래서 파타고니아 옷은 간혹 세탁할 때 물이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