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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생각한다

artyou 2007. 6. 8. 21:18

*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생각한다


1.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과 개념


2.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

1) 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2) 70년대와 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렇게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극까지 치닫은 모더니즘의 허무적 페혜의 대안으로 볼수 있다. 세계의 양극체제가 붕괴되는 시점을 전후로 제3세계권 국가의 독립과 개도국의 문화적 욕구의 상승으로 말미암아 독자적인 양식들이 속속 생겨나게 된다.

멕시코의 거리미술(벽화)을 통한 언더그라운드 미술형식이나 한국의 신구상적 요소의 민족미술 등이 이러한 부류에 속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다원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다원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 개념의 하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개념이 무한하며 우리의 입장에선 한국적 시각의 국체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모더니즘이 뛰어난 사상적 요소를 등지고 끝간데 없이 흘러왔다가 그 이론을 위한 이론, 사상을 위한 사상의 허무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을 낳았듯이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애매모호함이 하나의 결정체로서 독자적인 영역이 구축 되어지지 않을 때 다시 네오포스터 모던이나 탈포스트모더니즘의 이상형식이 새로이 대두되지 않을까 예측한다.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던의 후기적 성향이 아니라 모던에 대한 반발적 성격으로 보아야 앞으로의 전개도 각성을 통한 발전적 요소의 새로운 이즘 창출이 되리라고 본다.



1.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과 개념

 포스트모더니(postmodernism)은 후기 현대 사회라는 관점과 긴밀한 관계성을 맺고 있는데 포스트라는 말은 언어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인 용어적 도구이며, 그것은 이따금씩 뛰어난 이전 시대의 운동들을 언급함으로써 특정한 사건들의 위치를 적절하게 지적하는 중성적이며 편리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다른 형상을 위한 후시성으로 특정 지워지는 그러한 특정한 형상적 사실은 결코 그것이 앞에 것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포스트는 긍정적인 시대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부재가 일반적으로 변환 적인 시대의 특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어원은 여전히 불확실하나, 1934년에 마드리드에서 출간된「스페인 및 라틴 아메리카 시선집」이라는 책에서 페드리코 드 오니(fedrico de oni s)가 포스트모데리니시모 (postmiderinicimo)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1942년 더들리 피츠가 자신이 편집한 「현대 라틴 아메리카 시선집」속에서 그 용어를 다시 한번 사용했다. 이들은 모두 20c 초반의 시기에 관심을 갖고 모더니즘 그 자체에 이미 내재하고 있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다. 1947년에 D.C 소머벨(somevell)이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의 역사 연구 (a study of history)를 요약해서 출판했을 때 제1권에서 사용한 바 있다. 토인비는 서구 문명에 있어 대략 1875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가리키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은 도시 산업노동자의 비이성과 무정부적인 시대를 예언적으로 지칭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찰스 올슨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여 그 용어의 사용범위를 확산시켰다.

1959년과 60년에 어빙 하우(irving howe)와 헤리 레빈(harry levin)은 다소 불만스런 태도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그 당시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확산되어 있던 모더니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글을 발표하였다. 어빙 하우는 포스트모던상황을「대중사회의 등장과 함께 가족과 같은 전통적인 권위의 중신이 희박해져 가고 무기력이 사회적인 태도로서 만연하는 동시에 인간 자신은 생산품, 유흥산업, 그리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소비자로 전락되었다.」고 하면서 위대한 모더니즘의 쇠퇴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이 말을 썼다. 반면 레슬리 피들러(leslie fiedler)는 모더니즘의 종말을 진단하며 반이성적이고 낭만적이며 무책임한 묵시적인 새로운 대중문화의 도래를 선언하였다.

50․60년대 미국 문화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자주 사용되긴 했지만 요즘 쓰이는 의미에 가까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70년대 중반 이후이다. 본격적인 모더니즘을 공격하며 새로운 감성, 캠프(camp)를 옹호한 수잔 손타그(susan sontag)외에도, 이합 핫산(ihab hassan)은 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 가장 큰 공로자이다. 그는 기술만능, 비인간화, 도시화 등을 배경으로한 반권위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주장하다 80년대 들어서는「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속성을 구별하는 대조표」까지 만들기에 이른다. 주로 미국의 문학계에서 맴돌던 이 용어가 유럽으로 전해지게 된 것은 70년대 말경으로 프랑스에서는 장 프랑스와 리오타르(jean francois lyitard)와 프리스티바(kristeva)가 독일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이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국제적인 확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합 핫산의 영향을 받은 리오타르는 1979년「포스트모던의 상황」이란 책을 내놓음으로써 문학내에 갇혀 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을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방면으로 퍼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프랑스의 탈구조주의(poat structuralism)에 기반한 사회비판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리 잡힌 것에는 리오타르의 역할이 무척 크다할 것이다.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리오타르는「거대 설화의 해체」를 주장하는데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나 쟈크 데리다(jaeques derrida)가 주장하는 형이상학의 해체, 주체나 진실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일치한다. 이런 경향을 하버마스는 합리적 이성, 보편성을 부정하는 니이체적인 허무주의라고 비난하며 신보수주의의 등장이라고 우려하는데, 지난 2세기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일련의 이념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데 이들 탈구조주의자들의 역할이 컸던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80년대 초에는 예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모더니티 논쟁이 서구사회 지식인 사이에서 가장 큰 주제로 부각된다.

미술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활발하게 된 것은 건축분야에서의 논쟁이 무성하였던 70년대 이후부터 이고, 주로 미국에서 쓰이던 이 말이 국제적으로 확산된 것도 건축분야에서 비롯된다. 이같이 건축과 관련된 맥락에서 80년대 전후 미술계에서 유행하였던 형상으로의 복귀 또는 개념미술이후의 다원주의 등을 지칭하여 사용하게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

1960년대 및 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견해를 부정하거나 비판한다. 전시대의 고급모더니즘과의 결합을 뿌리치면서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 아방가르드 유산을 소생시키려 했고 듀상-케이지-워홀을 축으로 하는 미국적 형식을 접맥시키려 했다. 70년대가 되자 60년대의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점차 생명력을 잃어 갔으며 70년대의 새로운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절충주의의 출현으로 비판, 변화, 부정을 내세우는 주장을 단념해버린 긍정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안적 포스트모더니즘(alternative postmodernism)의 출현, 즉 아방가르드적 용어, 말하자면 오래된 모더니즘 이론보다는 효율적으로 현대문화의 정치적 발전에 부응하는 용어에 의해서 재규정되는 견해의 부각이다.

1) 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50년대 중반 이후의 문학과 예술에서는 추상표현주의, 세리음악 그리고 고전적 모더니즘문학의 지배에 대항하는 라우센버그(Rauschenberg), 쟈스퍼존스(Jasper Johns), 캐로엑(Kerouac), 진스버그(Ginsberg)와 비트스(the beats),

바로스(Burroughs), 비텔메(Barthelme)등의 새 세대예술가들이 등장했고 수잔 손탁, 레슬리 피들러, 이합 핫산과 같은 비평가들과 제휴됐다.

비평가 제랄드 그레이프(Gerald Graff)는 60년대 포스트모던문화를 두 경향으로 구분했다. 그레이프에 의하면 절망적인 예언적 경향과 환희에 찬 이상적 경향은 이미 모더니즘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다니엘 벨(Daniel Bell)은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모더니스트들 의도의 논리적 귀결」이었다고 주장했다. 벨과 그레이프는 50년대 후반 및 60년대의 항거를 고전적 모더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혁명으로 보기 보다는 일찍부터 허무부주의적 색체를 띠었던 모더니즘 경향의 지속으로 보았다.

후이센은 60년대 항거는 모더니즘 그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오히려 50년대 진보적-보수적 역할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던 길들여진 모더니즘 견해에 대한 항거였고 반공산주의 사상이 범람했던 냉전시대의 문화적-정치적 병기고로서의 선전무기로까지 변색된 모더니즘 견해에 대한 항거로 보았다. 예술가들의 항거에 직면한 모더니즘은 더 이상 대항 문화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고급모더니즘의 상상적 추상보다는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 같은 연속적 아방가르드 운동의 상상적 추상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연출되고 있었던 당시의 역사적 상황들, 즉 시민권 운동, 투쟁 캠프, 반전운동, 반문화등으로 인해 이러한 아방가르드는 독특한 미국적인 것으로 되는데, 이때 사용된 미학적 형식들과 기교들에 대한 용어는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예술과 삶의 재통합을 기도하는 아방가르드의 특별한 급진주의, 즉 헤게모니를 쥔 이론으로서의 고급예술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아방가르드가 60년대의 미국적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해프닝, 독특한 팝, 사이키델릭 예술, 애시드 로크, 대안적인 거리무대의 형식을 취하며 초창기 현대 예술을 육성시킨, 그러나 더 이상은 존속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대항적 정신을 재수용하려했다. 팝아방그르의 성공은 유럽의 초기 아방가르그드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고도로 발전된 문화산업 속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상품화와의 결탁에도 불구하고 팝아방가르드는 60년대 대항문화(Culture of Confrontation)에 버금가는 비판력을 가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많은 초기 주창자들은 20년대 아방가르드의 단편인 테크놀로지적 낙관주의에 동조했다. 20년대에 사진과 영화가 베르토프(Vertov), 트레티야코프(Tretyakov)등에게 하나의 가능성이었듯이 텔레비젼, 비디오와 컴퓨터가 1960년대의 기계기술적인 미학의 선구자에게 그러하였다. 맥루한(Mc Luhan)의 인공두뇌학적이며 기술 관료적인 매체종말론이라든가 핫산의 「쾌주하는 테크놀로지」, 「매체에 의한 제한 없는 분산」, 「대리의식으로서의 컴퓨터」등은 후기 산업사회의 자가 도취적인 자아와 쉽게 결합하였다.

로큰롤과 대중음악, 일상적인 심상들, 대중문학의 복합적인 형태를 찬양하던 1960년대의 이러한 「대중주의적」경향은 반문화운동의 맥락에서 그리고 다음으로는 현대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그 이전의 미국전통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힘을 얻었다.

피들러가 1965년 발표한「새로운 돌연변이체들 The New Mutants」는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피들러는 「탈백인 Post-White」,「탈남성 Post-male」

「탈인간주의 Post-humanist」,「탈청교도 Post-puritan」등을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모더니스트적인 도그마와 서구문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기성문화 체계가 갖고 있는 개념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미국의 전반적 정치상황이, 아방가르디즘과 전위 정치 사이에 미약하고도 단명했던 연합전선이 이루어졌던 1920년대 초반의 베를린이나 모스크바의 정치상황과는 결코 비유할 바는 안 된다. 하더라도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에는 진정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성분이 얼마간은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존재론적 모습을 반영하는 의미로서의 아방가르드주의가 내포한 정신은 60년대의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그때까지 고갈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모더니티 내에 이러한 비동시성이 잠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70년대와 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70년대 상황은 모더니즘 자체의 와해를 실현시키는 예술적 책략의 좀 더 광범위한 확산과 유포로 특징 지울 수 있다. 모더니즘 체계를 공격하고 그것의 어휘를 박탈하며 전근대(premodern) 및 비근대(nonmodern)문화 뿐만 아니라 현대적 대중문화의 이미지들과 모티브들을 닥치는 대로 추출하여 보충하였다.

70년대 중반에 이르자 선행시대의 기본 가정들은 종적을 감추거나 아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졌다. 날로 더해 가는 상업화의 확산이 아방가르드 정신을 강탈해 버림으로써 팝 록크, 그리고 아방가르의 우상파괴적 제스cb어들은 탈진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기계공학, 매체, 그리고 대중문화에 대한 초기의 낙관론은 좀더 냉정하고 비판적인 평가로 대치되었고 반문화, 신좌파, 반전운동은 성숙치 못한 미국역사의 궤도 일탈로 어느 때보다도 더 자주 미판을 받았다. 1960년대는 아직도 여러 양식들(팝, 광학예술, 키네틱 아느, 미니멀 아트, 관념예술)이 연속해서 논리적으로 생겨났다든가 아니면 모더니스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예술에 대항하는 반예술과 비예술의 행위 등으로 논의될 수 있는 반면에 1970년에는 그러한 구별들이 점차 그 근거를 상실해 갔다.

70년대 미술은 다시금 장식적으로 또는 도덕적이고 과장되게 또는 소형화, 인류학적, 고고학적, 사회생태학적, 자전적, 허구적으로 됨에 따라서 모방의 문제,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과거에는 소흘히 여겼던 환상적, 연극적, 장식적, 문화적 등의 단어들이 부활했다. 1978년 부적절한 미학과 막연한 취미를 제시했던 신미술관(new museum)의「bad painting」전과 1979년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최된「새로운 이미지 the new image」전은 채색된 이미지에로의 복귀를 예고한다.

70년대 후반, 이른바 다원주의적 시기동안에 서로 중복되어 존재하던 양식의 혼란으로부터 갑자기 신표현주의가 미국과 유럽에서 지배적인 사조로 등장했고 시대정신의 낡은 개념이 또 풍미했는데 시대정신은 신표현주의 미술에 극한 되지 않고 실험적, 독창적, 발명적, 분석적으로 분명히 아방가르드적인 어떤 것의 광범위한 거부를 포함하였다. 그 대신 초자연적인 새로운 종류의 역사주의, 원시주의, 표현주의 등이 비합리적으로 수용되었다.

80년대에는 동시적인 미술운동이 즐비하게 도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표현주의를 시작으로 네오지오(neo geo), 네오 미니멀리즘(neo minimalism), 네오 콘셉츄얼리즘(neo conceptualism), 시뮬레이셔니즘(simulationism)등과 자발적으로 일어났다가 종종 즉시 사라지는 개인적인 ‘환원’의 부활을 포함한다. 80년대는 ‘회화의 재탄생’ 그리고 자신들의 국가가 지닌 과거의 화해를 꾀하는 유럽의 새로운 독일 이탈리아 화가들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요란스런 거리 예술과 거친 낙서화까지도 수용했던 뉴욕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의 비형식적 표현주의 미학이 출현하면서 시작되기도 했다.

형식과 양식 그리고 컨텍스트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으며, 전통의 이론이나 사관에 얽매이는 것보다 개인적 모티브, 사물과 어떤 동기가 갖는 개념, 단절과 결합의 중간 지점에선 묘한 심리상태, 과거의 것을 오늘날의 사고와 감각으로 해석, 환원시키는 양상이 80년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3.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반적 특성

모더니즘은 유일무이한 현상이 결코 아니었다. 모더니즘은 미래주의․구성주의와 같은 근대화에의 도취, 또「낭만적 반자본주의(romantic anti-capitalism」의 여러 모던형식과 같이 근대화의 강력한 비판을 모두 기자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다양한 논의의 양상을 띠며 구축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는 전통의 관련성 아래서, 혹은 차이점 아래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공통적 특징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는데, 본질적인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과의 단절, 불확정성, 파편화, 반리얼리즘, 전위적 실험성,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그리고 비역사성과 비정치성등에 있어 모더니즘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런 특징들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같은 특징들에 대해 모더니즘보다 한결 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전통과 인습에의 도전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제까지 서구세계를 지배해온 휴머니즘전통을 비판함으로써 변혁과 혁신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두 이론이「대항문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이 지니는 비결정성 혹은 불확정성에 대해 핫산은「비결정성은 우리의 행동과 관념, 그리고 해석행위에 침윤되어 있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0c 후반이 흔히「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용어로 요약되는 것을 보아도 이점을 잘 알 수 있다.

비결정성에 필수적을 수반되는 것이 바로 다원성과 상대성의 문제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특징적으로 일원론이나 절대성을 배격하고 보다 다원적인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비결정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파편화 편리화현상 역시 이미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한결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결합보다는 단절, 질서보다는 혼돈, 그리고 총체성이나 종합보다는 해체나 분해를 더욱 중시하기 때문이다.「총체성에 대한 전쟁을 일으키자..............여러 가지 차이점을 활성화시키자」라고 한 리오타르의 주장은 바로 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파편화나 편린화는 몽타쥬나 콜라쥬의 기법을 통해 잘 나타난다.

총체성에 대한 거부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특히 포스트구조주의는 이제까지 구조주의자들이 공시적인 체계의 수립을 통해 인간의 기호 세계를 정복하고자 시도해온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하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어 신고전주의와 리얼리즘에서 극한점에 달한 모방이론과 리얼리즘에 기초하고 있는 제시성과 재현성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사실상 반리얼리즘은 이 두 이론을 서로 결합시켜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학을 임마뉴엘 칸트의「숭고함」의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리오타르는 비제시성과 비재현성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모더니즘의 경우보다 한결 더 첨예하게 강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는 제시할 수 없는 것을 바로 제시하는 것, 훌륭한 형식의 위로와 성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향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취향의 일치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 새로운 제시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흔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형식과 기교를 통해 부르조아의 정신적 자기만족감을 파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모더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흔히 리얼리즘 예술가들이 추구해온 삶에 대한 환상을 의도적으로 깨뜨리고 있다. 비토리 쉬클로프스키나 보리스 아이헨바움과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낯설게 하기」나「탈자동화의 개념」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소외효과」의 개념은 사실상 이 실험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러한 특징을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혹은 미래파와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 그리고 모더니즘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극한점이 달했다.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는 불확정성이나 비결정성에서 야기되는 문제로 의견과 실재, 기대와 결과들의 불일치를 통해 고정불변한 의미나 의도를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어느 한 증상이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한다. 아이러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물론 모더니즘에서도 사용하는 중요한 장치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두 전통이나 이론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모더니즘의 경우 아이러니는 상징이나 메타포(metarphor)혹은 알레고리(allegorie)와 마찬가지로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충하는 인간 경험을 결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그것은 오히려 인간 경험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비역사성과 공시성, 그리고 그것에 수반되는 비정치성은 본질적으로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연속성보다는 불연속성을, 전통의 계승보다는 전통의 단절을 강조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의 비역사적 특성이나 비정치적 특성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위적 실험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역사적 통시성이 배제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히 주어진 시간 안에서 새로운 방법과 기교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비역사적-비정치적 특성은 독일 신보수주의자 하버마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 르레드릭 제임슨 등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포스트 모던 미술이나 건축은 다른 어떤 예술 영역보다는 역사상에의 복귀현상이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역사적 절충주의」에 의해 특징 지워지며, 따라서 모더니즘과의 단절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포스트모더니즘이 본질적인 면에서 모더니즘과의 단절이기보다 오히려 그것의 논리적인 계승이며 발전이라는 전제 아래 포스트모더니즘을 규정짓는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논리적으로 계승되고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으로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에 해당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인 면에서는 모더니즘과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반면 다른 중요한 면에서는 그것과 구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相異性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달리 脫正典化 혹은 脫中心化 현상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탈정전화는 넓게는 神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작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산되어 있는 현상이다. 모더니즘 역시 그 나름대로 이런 정전이나 권위에 대해 심각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모더니즘은 이런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격한 계급적 질서와 권위를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패러디와 패스티쉬, 주면적인 것의 부상, 양식의 다원성 등에 있어 모더니즘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1)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자아와 주관성의 문제는 서구 휴머니즘 전통의 근간을 이루어 온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모더니즘은 자아와 주관성, 그리고 그것에 기초하고 있는 개인주의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였다. 특히 예술의 경우 자아나 주체는 텍스트에 존재하는 고정된 의미를 만들어 내는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의 기원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런 자아나 주관성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다니엘 벨은 「모더니즘은 이제 고갈되었으며, 다양한 유형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개인적 에고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으로 자아를 분해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자아의 중요성이나 총체성의 문제보다는 자아의 상실이나 분산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2) 패러디(parody)와 패스티쉬(paetiche)

포스트모더니즘은 패러디나 패스티쉬를 핵심적인 예술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이 특징은 자아의 분산이나 상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탈정전화나 탈중심화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패러디를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寄生的인 작품으로 전락하는 반면, 경우에 따라서는 원형에 못지 않게 훌륭한 창조적인 작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패러디는 모더니즘의 경우와 비교하여 한결 다른 양상과 형태로 나타난다. 모더니즘의 경우 그것은 어디까지나 암시적이고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는 보다 명시적으로 그리고 보다 일관성 있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전자의 경우 패러디가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 보다 긍정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할 포스터는 패스티쉬가 역사성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포스터에 의하면「포스트모던 미술관 건축의 경우 채스티쉬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스타일들은 측정한 문맥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까지도 막탈당한다. 수많은 상징물로 전락된 여러 가지 스타일들은 부분적 幻影의 형태로 재생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역사」는 物化되고 파편화되며 날조된다.」고 한다. 따라서 포스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역사에의 복귀는 한낱 실체가 없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3) 주변적인 것의 부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인 계급적 질서의 붕괴, 그리고 새로운 계급의 출현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말하는 이른바「억압된 것의 복귀」가 매우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런「억압된 것의 복귀」양상은 우선 무엇보다도 소수 민족의 부상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초엽부터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같은 정치운동으로 인하여 흑인의 위치가 상당히 격상되었다.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권리와 자유를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같은 현상은 또한 소수민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러나 이런 주변적인 것의 복귀현상이 무엇보다 잘 나타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性의 해방에서이다. 이런 성의 해방현상이 가장 명시적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일어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패미니즘운동이나 패미니즘 문학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은 특징적으로 남성 중심주의에 기초한 전통 이론이었던 것이다.

(4) 양식의 다원성

모더니스트들은 새로운 기계류와 과학기술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보고 그를 근거로, 빅토리아풍의 예술 및 디자인의 양식적 무정부주의와의 절충을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새시대의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스타일과 새 재료, 새 기술, 새기법이라는 강권적 의무의 창출이 불가피 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각 시대는 오직 하나의 스타일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사고 방식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스타일의 다원성이 존재한다. 는 생각에 의해 거부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충주의, 異種交配의 복합적 스타일이 유행하며 단독의 스타일이 지배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3) 포스트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차이점

현대미술의 최근 경향에 대한 몇인이나 그룹운동들에 관해서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이것은 미술작품이나 문예작품을 옛것이나 현대의 것을 막론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그 독해와 시각의 문제이상으로 독해자가 보는 사상의 문제를 언어표현(diskurs)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Ihanb hassan의 도표

 

모더니즘 

상징주의 

형식(연결적․폐쇄적) 

목적 

의도 

위계질서 

통달/말(로고스) 

객체로서의 예술/완결된 작품 

거리유지 

창조/총합화 

종합 

존재 

집중화 

장르/경계 

의미론 

계열관계 

종속적구문 

은유 

선별 

뿌리/깊이 

해석/독서 

시니피에 

읽을수있는(독자적) 

설화/장대한 역사 

전체 통제부호 

증상 

유형 

생식기의/남근의 

편집증 

기원/원인 

하나님 아버지(유일신) 

형이상학 

확정 

초월 

 

포스트 모더니즘

다다이즘

반형식(분열적․개방적)

유희

우연

무질서

소모/침묵

과정/수행/해프닝

참여

파괴/디컨스트럭션

대조

부재

분산화

텍스트/텍스트간의 상호관계

수사학

결합관계

병력적구문

환유

조합

뿌리줄기/표면

반해석/오독

시니피앙

쓸수있는(작가적)

반설화/사소한 역사

개인 방언

욕망

돌연변이

다형태의/양성의

정신분열증

차이차이/흔적

성령

아이러니

불확정

보편내재




4.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적 특징과 작품분석

1)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1)상업적 보수주의

상업적 보수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쥴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과 데이빗 살(david salle)의 그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작품중에 나타나는 정신분열적 산만함, 애매한 상징성, 대상화된 여성(도판1), 영웅적인 남성 예술가 등을 비롯해 작가를 창조자로 복귀시키고, 유일무이한 손으로 그린 회화, 물신숭배적오브제의 부착 등의 모더니즘의 특색과 재현․형상 색채로 회귀하려는 반모더니즘적 요소가 공존해 있다.

쥴리앙 슈나벨은 1979년 메리분(mary boone)화랑에서 첫 뉴욕 전시회를 가진 이래 2년도 채 못돼 독보적인 미국작가로 부상했다. 1984년에 제작한 대작「숲의 왕 king of the wood」(도판2)에서 수백 개의 접시들과 벽면에서 몇 인치씩이나 튀어나온 도자기 조각들은 6개의 판넬위에 붙여졌다. 그 접시들 위에는 길게 뻗은 나무가 그려져 있고 외투를 두르고 왕관을 쓴 인물이 칼을 쥔 채 서 있다. 그리고 인물 양쪽엔 커다란 나무 뿌리가 얼기설기 화면 밖으로 도출되어 있다. 입상의 인물은 다이아나 여왕의 성소였던 네미라는 숲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금관은 아네에아스에게 빼앗기고 지하세계로 들어가 성스런 나무들로부터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슈나벨이 ‘낭만주의자’임에 반해 살레는 종종 고전주의자로 여겨진다. 슈나벨이 그의 과감한 개인적 양식과 비상한 재주 안에 이미지를 끌어넣으려 하는 반면, 살레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분리(도판3)시킨다. 살레에 있어 독창성이란 그가 말하듯「개인적 양식의 문제 바깥에 위치한 것이다.」간단히 말해 독창성이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레는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살레의 1984년 作「그의 머리」(도판4)는 연결되지 않는 언어의 집적체를 보여준다. 한쪽엔 프린트된 직물 위에 획이 아래로 그어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상업일러스트레이터의 스타일로 그려진 발가벗은 여인이 뒤편을 향해 있으며, 그녀의 엉덩이 주변에는 네 명의 남자얼굴 윤곽이 각인 되어져 있으며, 빠른 속도로 묘사된 심려하는 듯한 여인과 질료감을 살려 그린 요트를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살레의 작품은 종종 페미니스트에게서부터 그의 농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로 인해 공격과 비난을 받는다. 그의 도색적인 그림은 1985년 제작한 「희귀한 차들」도판7에서 극에 달했다. 하나의 패널에는 가슴이 큰 여자가 의자에 묶여 있고 다른 패널에는 납위에 마구 휘갈겨 그린 메리 포핀스풍의 옷차림을 한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패널에는 사물이 납속에 가려있는 것처럼 첫 번째 패널에는 밝은 색조의 라디오가 화면의 일루져니즘을 해체하기 위해 그려져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요소를 해체해 가면서 살레는 흡사 실내장식가처럼 조심스럽게 정열해 놓은 사물들로 공간을 매워간다. 실상 살레의 회화는 무질서한 회화에 일시적이나마 혹은 잠재적으로나마 질서를 부여 (도판5)하고 있다.

(2) 비판적 저항주의 (시뮬레이션 아트 simulation art)

비판적 저항주의의 포스트모던즘의 대표적 작가로는 한스 하케 (hans haacke), 제니 홀저(jenny holzer), 제프 쿤스(jeff koons)를 들 수 있겠는데, 이들은 모더니즘내의 비판적․저항적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며, 개념미술의 잔재와 60․70년대 대항 문화적 정치 미술의 흔적을 함께 이어받고 있다. 이들 작품에 나타난 내용과 서술성의 중시(도판6), 비순수성, 직접적인 의사소통, 정보사회의 반영 등 특성은 모더니즘 예술과 강한 대조를 이루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다다이즘 또는 정치성이 강한 아방가르드를 연상시키는 특징들은 모더니즘과의 단절과 함께 지속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

시뮬레이션 아트는 1968년 결성된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그룹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1965년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펴고 있는 반자본주의 하이퍼 리얼리즘의 작가 한스 하케의 작품 주제는 대중의 관심이나 의식을 조작하려는 정치 사회적 문제를 제시하여 비판하는 (도판7) 것으로 사진을 이용하거나 (도판8,9) 윤리적인 문구를 인용하여 콜라쥬한 그의 작품이야말로 시뮬레이션 아트의 선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뉴욕 미술동향은 퍽 다양하고 새로운 움직임들이 있었다. 비판적 저항주의가 미술계내의 이념적 비평적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상업적 보수주의는 미술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호대립과 보완이 얼켜있는 복잡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3)그 밖의 미국의 대표적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와 작품

에릭 피슬(eric fischle) 은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적 상황을 정확하게 방영하면서 오히려 그것의 토행성과 황폐삼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준다. (도판10)

매스미디어에 투사된 여성 이미지를 해체하는 패러디를 보여주는 신디셔먼(cindy sherman)은「자아가 하나의 구성물」이하는 의식을 작품에 반영한다. 이러한 자아적 초상화에는 소외와 내적인 응시, 자기 고백적인 언어가 있다.(도판11)

또한 로버트 롱그(rodert longo)는 차용된 이미지의 알레고리적 재현을 통해 현대인의 의식을 표현한다.(도판12)

포스트모더니즘작가로 흔히 알려진 이들 에릭 피슬, 신디셔먼, 로버드 롱고등의 작품에는 포스트모더니즘보다는 모더니즘적 특색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2)독일의 신표현주의회화

키르히너의 표현주의가 19c 이후 계속해온 프랑스 미술의 유럽 지배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독일 신표현주의는 회화는 2차 대전이후 미국미술이 계속해온 세계화단의 중심권적 역할에 대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

안셀름 키이퍼(anselm kiefer)는 인간이 없는 황야풍경을 전통적인 투시법으로 그린 일련의 연작으로 알려졌다. 그의 화법은 전통적이지만 내용은 집념적으로 독일의 역사, 그 중에서도 히틀러의 제국시대, 특히 2차대전의 독일 패망과 관련된, 타부시하여 말하기를 꺼려하는 독일의 비교적 가까운 역사,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제기한다. 그의 기법은 자유분방하며, 지푸라기더미를 붙이기도 하고 물감을 화면 위에 뒤흔들기도 하며, 때로는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앙포르멜 추상에서의 드리핑기법이나, 얼룩화법(도판13)을 썼다. 게다가 숫자(도판14)나 글자도 쓰여졌으며 도판21이러한 그림 속의 문자 사용은 조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림을 대신하여 쓰여진 개념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펭크(a․r penk)를 살펴보면 그의 그림은 감정보다는 두뇌로 그린 그림이라는 인상을 준다. 젖가락같이 길다란 검은색으로 그려진 선모인물들이 화면 가득히 메워져서 투시법적인 자연 속의 인간상이 아니라 평면적인 화면 위에 배치된 도안 모티브 같다.(도판15) 펭크는 자연의 변형이 아니라,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며 현실감이 없는 것이 그의 특성이다.

독일의 신표현주의는 민족적 바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국제적인 보편성보다 자기생성의 경험과 지식이 핵을 이루는 감각적인 세계관인 것에 반해 미국의 경우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외적자극에서 유발된 정신분열병적 심리, 관심거리의 오브제를 구성 사용하여 도출된 결과라 하겠다.   3)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디아

이탈리아 미술 비평가 보니토 올리바(bonito olive)는 16c 의 매너리즘과 80년대 미술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산드로 키아(sandro chia),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등과 같은 트랜스아방가르디아 작가의 회화나 조각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키아의 풍만한 인물들의 팽창된 신체(도판16), 풍자적이며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효과로 가득찬 클레멘테의 복잡한 은유들, 쿠치의 예술영역에서 드러나는 신비한 몸체가 없는 얼굴들과 얼굴 없는 몸체들, 고전주의의 벽화와 타피스트리(tapestries)를 연상시키고 모자이크와도 유사함을 보여 주는 팔라디노의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서술적 양식 등의 회화세계에서는 매너리즘의 주요한 특징중의 하나인 의곡되어진 형태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들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디아 화가들은 매혹적인 것과 기묘한 것, 외설스러운 것을 강조하며, 과거의 신화들을 인용하고,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것을 결합시킨다.

외견상 매너리즘 화가들의 작품특성과 오늘날의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디아 화가들의 작품에는 어떤 대단함이나, 특이한 정신이 없고 덜 필사적이고, 유희적이며 산만하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주장, 극단적인 주제, 생리학적요소, 인간 신체를 가지고 강박관념을 표현하는 것, 동질성 결여, 회화 구조의 파편화, 서술화, 일반적이지 않은 색페의 선택등의 눈에 뜨이는 유사함이 있기도 하다.

특히 자기 발견의 주제들은 80년대 초의 예술분야에서 이들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회화를 획기적인 것으로 만들게 했다. 트랜스아방가르디아 작가들은 프레스코, 유화, 수채화, 드로잉, 모자이크 등의 전통적인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것은 회와의 종말을 선언했던 이전 세대에 대한 젊은 트랜스아방가르디아 작가들의 항변이상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트랜스아방가르디아 화가들의 작품 속에는 매너리즘에서는 완벽히 결여된 세계주의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차이는 트랜스아방가르디아의 원초적인 힘의 하나인 아이러니인 것이다. 아이러니는 아방가르드와 포스트아방가르드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사실 80년대 예술은 과거에는 희귀라는 미명하에「새로운」예술로서 기술되는 사실에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5. 건축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나타난 분야는 바로 건축이었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근대건축이 초래한 반 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이며, 기능과 생산성 우위의 전축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건축은, 건축이 재료와 구조의 사용에서 진실해야 하며, 건축의 형태구성이 시대정신에 부합해야 한다는 근대건축의 논리대신에 표현의 수단일 수 있으며. 범 세계적 이기보다는 지역적이며, 규범적인 산물의 것이기보다는 개인적인 창조의 산물일수 있다는 논리를 가진다. 또한 건축의 작업은 창조성보다는 역사의 존재성을 가지며, 동시에 하나의 원리체계가 아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즉 건축행위에 있어서의 다원주의(pouralism)의 대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 건축인 것이다.


6. 결론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 개념, 전개, 특징 등 대략 살펴보았는데 이 이외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용어적 연륜이 상대적으로 짧고 여러 가지 다른 애매한 용어들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여 아직까지는 개념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반모더니즘이나 탈모더니즘이 아니며 모더니즘 후기 현상은 더욱 아니고 모스트모더니즘은 중요한 면에서는 구분된다. 리오타르는「하나의 작품은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이 될 때에만 비로소 모던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는 끝없이 되풀이된다.」고 말하고 이는데 그의 주장처럼 포스트모더니증은 미래와 과거라는 패러독스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고도로 복합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고 해서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양식이나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오히려 전통은 계승 발전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사상이나 양식들도 많은 변화 과정을 격게 마련이다. 과거의 제시된 문명에 대한 영향력 깊은 주장들이 오늘날까지 계속현대인들의 정신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곳 명확해진다. 과거의 제시한 많은 개념들과 주장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번 재검토 내지 재인식되어 왔다. 만일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역사는 영원히 똑같은 모습으로 무의미하게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도 그것이 어느 한 독창적인 인식론이라기보다는 20세기의 서구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재인식 내지 재검토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l

무정형, 해체주의, 다원주의, 절충주의, 지역적이고 주변적인 것이 부상등의 요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한다해도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자체 안에 어떤 것이라도 파괴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수잔 손탁이 말한 바 있는 어떤「통합적인 감각」을 찾아내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피들러가 지적했던 것과 같은「경계선을 넘고 간격을 메우려는」필요성이 절실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한 지적 유행이나 게임은 결코 아니며 현실적인 문제를 호도하기 위한 은폐물은 더욱 아니고 20c 후반을 특징짓는 일종의 시대정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인식론적 움직임이 오늘의 우리 미술계에 새로운 감수성과 새로운 돌파구를 가져다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위 글 또한 전체적으로 많은 서적에서 인용해온 글이므로 모두가 김병호 본인의 글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손가락으로 타자화되어나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 글은 나에게 저작의 권한은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오면서 부분인용의 출처를 분명하게 명기하지 못한것은 본인의 잘못이며, 누구든지 정보의 관점에서 나의 글을 읽어줄것을 당부한다. 인용시 김병호의 글로 인용하는 오류가 없길 바라며...